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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ante, 천천히 걷는 빠르기로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2.11.10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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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1월이 되었습니다. 
새 학기로 새로운 결심에 가득 찬 학생들과 어느덧 하반기가 되었다는 세월의 빠르기를 느낀 어른들로 가득했던 9월은 어느덧 멀리 가버렸습니다. 
대학생인 저 역시 서울로 다시 돌아오며 머릿속에 가득 적었던 목표와 다짐들은 어느새 전공 책과 조사자료들 밑에 쌓여 잘 보이지 않네요. 오늘은 곧 인생의 커다란 시험을 칠 친구들에게 글을 바칠까 합니다. 


 2년 전 겨울, 19살의 저는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수능을 보기 전 한참 자소서를 쓰기에 바빴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친구들과 석식을 먹고 반으로 돌아와 노트북 전원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러나 이럴수가! 노트북 화면은 까-맣게 응답이 없는걸요. 마음이 급해진 저는 4반 담임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고쳐보려 했지만 저를 도우려던 선생님의 노트북만 망가뜨리고 말았습니다. 
그제서야 자소서가 저 플라스틱 덩어리의 영영 열어볼 수 없는 보존서고로만 남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와닿은 저는 침울하게 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반에서 친구의 노트북을 빌려 다시 자소서를 써볼까 오늘은 그냥 포기할까 한참을 고민하던 와중 야자 감독 선생님이 들어오셨습니다. 
그 선생님은 평소 저의 자소서를 자주 손봐주셨던 선생님이셨기에 자소서를 잃었다고 말하던 와중 추하게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창피하지만 말입니다. 선생님은 우는 저에게 ‘그러게 자동저장이 되는 사이트를 사용해 자소서를 보관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시더군요. 그 말에 내심 열이 받은 저는 눈물이 쏙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후에 친구가 말하길 선생님 담당 반으로 돌아가 ‘한 친구가 자소서를 날렸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저장을 잘하시기 바랍니다.’하고 전달했다는 겁니다. 네, 선생님들께서 자소서를 잃을뻔한 선배가 있으니 조심하라고 잔소리하실 때 그 선배가 저였습니다. 결국은 노트북을 다시 살려내 자소서를 완성하였고 현재 재학중인 서울여대의 학생 ‘슈니’가 될 수 있었지만요.


이렇게 별탈 없이 즐겁게 공부하고 있는 저에게도 수험생 때만큼은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원서 제출 기간에는 농어촌 서류를 제출하기 위해 완도고에서 우체국까지 걸어도 가보고, 자소서도 잃을뻔 해보고, 담임 선생님과 특정 학교를 지원하겠다 하지 않겠다를 가지고 실랑이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모두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때의 눈물은 저의 웃음이 되었습니다. 
태어나서 경험해본 적 없는 무거운 부담감을 안은 채 시험장에 들어서 아날로그 시계를 세워두고 촉박해 하며 마킹을 하고, 부모님이 마음을 가득 담아 싸주신 도시락을 먹고, 졸음을 참으며 영어 듣기를 듣고, 시험을 마치고 후련하게 나와 치킨을 시키고. 누구나에게 처음일 경험을 얼마나 두려워할지 알고 있습니다. 


그 두려움은 당연합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이 달린 처음은 두렵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동안 걸어온 만큼, 달려온 만큼 잘할 것임을 누구보다 믿고 있습니다. 제가 느껴봤으니까요. 하지만 탄탄대로의 길이 막혀도, 실수해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어른들이 만들어준 길에서 조금만 멈칫해도, 조금만 돌아가려 해도 다가오는 눈초리가 조금 달라집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우리네 인생을 사는 것은 당신이 아닌 우리니깐요. 내가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내가 구원이라고 바라보는 것이 있다면 달려갈 힘이 있잖아요. 
여러분은 사회적 통념 때문에, 특정 커리어를 갖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어떤 이유가 되었든 대학 진학을 선택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에게나 완벽한 시스템일 수는 없습니다. 특히나 끊임없이 채찍질 받는 입시 시스템에서 말입니다. 그럼에도 지금 여기까지 달려온 그네들에게 칭찬하고 싶습니다. 수능이 며칠 남았는지 꼬박꼬박 기록하고 있는 그네들에게 칭찬하고 싶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던 무엇인가 바라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우리 끝이 다가오는 만큼 경보로, 천천히 걷는 빠르기로 달려봅시다. 막판 스퍼트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봅시다. 그렇게 천천히 걸으며 나 자신을 안아주고, 먹여주고, 재워주며 달려봅시다. 


수능 시험장에 들어가는 스스로에게 따듯한 옷을 입혀주고 마중을 나갑시다. 그럼 우리는 곧 마주보며 웃고, 함께 걸어갈 수 있을 겁니다. 
약 일주일이 남지 않은 수능을 마주할 여러분들을 응원합니다. 수능특강 외에 긴 글을 읽을 시간이 없는 그네들에게 최근 공부하고 있는 한 편의 시를 선물하며 글을 마칩니다. 

 

봄은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오지 않는다.

너그럽고 빛나는 
봄의 그 눈짓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겨울은,
바다와 대륙 밖에서
그 매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 속에서
움트리라.

움터서,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
눈녹이듯 흐물흐물
녹여 버리겠지.

-신동엽, 「봄은」

 

 

김지현 님은 완도고 재학 중 본보 청소년기자로 활동했으며, 2021학년도 서울여대 국어국문과에 입학했다. 그녀의 별빛 같은 눈망울은 모두가 잠든 사이, 별들의 가장 깊은 시간 속으로 날아가 별빛이 감춰놓은 그 신비로운 반짝임을 누군가의 가슴에 뿌려 주려고 그렇게 반짝이는 것. 아름다운 국문학도가 되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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